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우파 투쟁 (문단 편집) == 배경 ==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 중국 공산당의 세력 확장과 [[중일전쟁]] 및 [[국공내전]]에서의 승리를 위해 지식인을 필요한 존재로 간주했고 이른바 [[신민주주의]]라는 그들과 연합하는 정책을 추진해 중국의 공산혁명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들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공산당에서 '착취계급'으로 간주한 지주, 관료 출신이었고 오랫동안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사상에 있어서도 구사회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인상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에 공산당은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와 당의 방침을 학습할 수 있도록 사상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각종 방법을 취했다. 1951년 9월, [[저우언라이]]는 <지식인의 개조 문제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올렸고, 같은 해 11월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학내 사상개조와 조직 정리에 관한 지시>를 발표하여 자아교육과 자애개조를 진행할 것을 호소했다. 지식인의 자산계급 사상을 무산계급 사상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이 사상개조운동은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을 지원하자는 '항미원조운동'과 함께 연계되어 미국을 대표로 하는 자산계급 교육과 [[존 듀이]]의 실용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을 전개했으며, [[후스]] 비판 운동도 함께 전개되었다. 여기에 1952년 동북 지역을 시작으로 중국 전역에 전개된 [[삼반오반운동]]에 호응하여 교육계에서 자산계급의 진부한 교육과 교학사상 비판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처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지식인들은 자산계급 속성을 지닌 것으로 분류되어 존재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대중으로부터 불신을 당해 깊은 실망과 좌절감을 느꼈다. 1956년 1월 10일, 베이징대학 철학과 교수 [[펑유란]](馮友蘭)은 '인민일보'에 <지식분자의 잠재력을 불러일으키자>는 사설을 개재했다. 이에 베이징 사범대학 학장 천위안(陳垣)이 호응해 1월 20일 인민일보에 사설 <지식분자 문제에 관한 나의 의견>을 게재했다. 이 두 사설은 지식분자에 대한 대우를 개선해 줄 것과 공산당의 지식분자에 대한 이해와 관계 개선을 요구했다. 이러한 두 사설에 호응해 사회 각계 지식인들의 투서가 중앙위원회에 쏟아졌다.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지식인들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 공산당은 전국의 토지를 국유화하고 부농을 타도하는 '[[토지개혁]]'을 완료했다고 판단하고 생산력의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경제건설을 위한 과학, 기술의 진흥이 필요했고, 자연히 민주인사나 지식인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1956년 1월 14일부터 20일까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식분자 문제'를 중심으로 회의를 열었다. 저우언라이는 이 자리에서 지식인 중 다수는 사회주의를 위해 일하는 국가의 일꾼이 되었기 때문에 이미 노동계급의 일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식인의 역량이 수에 있어서나 업무수준․정치의식에 있어 신속한 사회주의 건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정치문제는 지식인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당 내부에 더 많이 존재한다." 1월 25일, 마오쩌둥은 최고국무회의를 소집하여 '1956~67년 농업발전요강'을 결정하면서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와 과학면에서 신속하게 세계의 선진수준에 도달하려면 지식인들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후 1월 30일부터 2월 7일까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2기 전국위원회 제2회 회의, 이른바 '지식분자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앞의 두 회의의 결정을 구체적으로 토론하여 민주인사들과 연합한 민족민주통일전선을 조직하기로 결의했으며 민주인사 및 지식분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또한 저우언라이는 국가 발전을 위해 지식인들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것을 피력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대 지식인 정책이 변했음을 강조했고 마오쩌둥도 중국의 산업 특히 중공업설비와 정밀기계제조 부문은 소련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임을 지적하고,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을 통하여 이를 해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고급지식분자와 일반지식분자의 양성이 필수적이라고 하면서 지식인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한편 국외에서도 중국 공산당이 위협을 느낄 만한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1956년 [[니키타 흐루쇼프]]에 의해 소련에서 일어난 '[[스탈린]] 격하운동'은 스탈린처럼 국내에서 무소불위의 권세를 누리고 있던 마오쩌둥에게는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소련으로부터 원조를 받고 있던 중국으로서는 흐루시쵸프와 당장 대적할 수는 없었다. 중국 공산당은 흐루시쵸프가 스탈린에게 가한 비판 자체는 인정했지만 스탈린이 범한 잘못을 가지고 공적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했다. 또한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반소련 민주화운동이 벌어졌다가 소련군에게 진압된 사건이 벌어지자, 공산당은 국내의 지식인들이 소요를 일으킬 것을 우려했고 그들에게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게 해줌으로서 불만을 잠재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중국의 민족문제도 1950년대 중반 중공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중공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 중 하나는 한족을 제외하고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인 중국을 영역적, 제도적으로 어떻게 하나의 국가로 만들 것인가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초기, 중앙 정부는 민족구역자치제도를 실시해 민족간 평등 실현과 국가 통합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민족구별' 작업을 통해 소수민족을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민족자치구역과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선출과 한긑 정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광대한 소수민족 지역을 중국의 한 지방으로 정착시키고 소수민족을 중국의 인민으로 새롭게 편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 사회주의혁명과 공산사회 건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결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먼저 공산당의 토지개혁 과정에서 소수민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특히 광시성에 몰려 살던 [[좡족]]들은 오랜 세월 애써 일궈왔던 토지를 국가에서 몰수하는 것에 반발해 1950년대 내내 대규모 민란을 일으켰고, [[타오주]]를 비롯한 광시성장들은 이를 강경 진압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처형했다. 또한 한족 사이에서 만연하던 '[[대한족주의]]'와 소수민족의 '[[지방민족주의]]'가 충돌했다. 중국 공산당은 대한족주의를 "대민족주의의 중국식 표현으로, 착취계급 사상이 중국 국내민족 관계에 반영되어 비교적 작은 민족을 경시, 배척하고 압박하는 민족주의의 일종이다."라고 정의했고 지방민족주의를 "소수민족 중에서의 착취계급사상이 민족관계에 반영된 것으로 고립, 보수, 배외를 특징으로 한다."고 정의했다. 이 두 모순된 사상이 충돌하는 이상 중공이 바라는 완전한 통합은 요원했다. 1953년 3월, 마오쩌둥은 당내 지시를 통해 당내 많은 당원과 간부들 사이에 심각한 대한족주의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아주 위험한 것으로 빈드시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1956년 4월 25일 <10대 관계를 논함>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마오쩌둥은 대한족주의를 집중 비판할 것을 강조했다. >"지방민족주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은 중점이 아니다. 중점은 대한족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다. 인구에 따라 한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가령 한인이 대한족주의를 가지고 소수민족을 배척하면 그것은 아주 좋지 않다. 한족에게 프롤레타리아 민족정책 교육을 광범위하게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마오쩌둥의 "대한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실용적인 방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한족은 인구의 94%를 차지하지만 중국 영토의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반면에, 전체 인구의 6%를 차지하는 소수민족은 중국 영토의 60% 이상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또한 소수민족 지역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어서 중국 사회주의 건설 사업에 아주 중요했다. 따라서 소수민족을 제대로 대우하여 협조를 받아내는 것이 필요했고, 그러자면 지식인들의 협조가 절실했다. 이리하여 마오쩌둥은 지식인 포섭을 위한 일련의 정책을 개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